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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공자(孔子) - The Great Teacher (2012.02.04~05,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자(孔子) - THE GREAT TEACHER
2 0 1 2  F E B R U A R Y


한국공연예술센터 우수레퍼토리시리즈
2012.02.04 (토) PM 08:00 / 02.05 (일) PM 04:00 / PM 08:00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구 문예회관)

주최 :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 / 임학선 댄스 위
주관 : 임학선 댄스 위

안무 임학선 / 대본 이기동 / 조명디자인 안드레아스 린케스 / 영상 강낙현 / 디자인 LISB / 출연 임학선 댄스 위

티켓 : R석 70,000원, S석 50,000원, A석 30,000원 

예매 :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 http://www.hanpac.or.kr / 02-3668-0007
공연문의 : 010-4752-1749



배우고 제 때에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해도 화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니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하느니라.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언행이 바로 섰으며,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아니하였고,
쉬운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으며,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가도 법도를 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사람이었다.
배우되 싫증내지 아니하며 남에게 깨우치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니,
이외에 나에게 무엇이 있겠는가.



임학선 교수님의 한국무용 작품 '공자'는 2012년을 맞아 제가 처음으로 참여하는 대극장 공연입니다. 전통 유교의식 춤인 문묘일무를 기반으로 새로운 창작무용으로 재해석된 작품 '공자'는 2004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파리, 베이징 공연 등을 거치며 오늘날까지 오랜 기간 국내외의 호평속에 진행되어 온 공연입니다.
대극장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웅장한 춤도 일품이지만, 2011년 시작된 저의 새로운 이미지 프로젝트 <어둠속의 댄서들 (Dancers in the Dark)>에 언제나 등장하고 있는 그녀들, 그리고 그들, 바로 제가 친애해 마지않는 임학선 댄스 위 단원들이 거의 총 출동하는 큰 공연이기도 합니다.


큰 무대 위에 조명으로 만들어지는 빛과 어둠의 조화 아래, 힘이 넘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아련하게 펼쳐지는 한국의 선과 호흡을 느껴보세요. 아울러 제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댄스 위 소속 무용가들의 실력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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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oo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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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ist / Getty Images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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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테크 시대의 장인정신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속도를 선사합니다. 그러나 무한히 증가하는 기계의 속도는 이미 오래 전에 사람이 따라갈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죠.

'증가된 속도=시간의 획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테크놀로지는 시간을 절약해주어서 인생을 늘려 줍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의 동시 처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영역에서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해나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기계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오히려 사람에게 지워지는 부담이 곱절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발달하는 테크놀로지는 지속적으로 사람만의 영역을 줄여가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더욱 높은 위치에서의 사람의 역할은 중요해지리라고 봅니다.

'방망이 깎는 노인'의 이야기처럼, 장인정신이 가득 담긴 수제 명품과 같이 오늘날 하나하나 공들여 천천히 처리하는 작업 방식은 이미 구식이 되었습니다. 더더구나 그와 같은 사업모델 하나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어쩌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시대에는 체감상으로는 옛날만큼 공을 들이지는 못 하더라도 대량의 데이터를, 나아가 멀티플 워크플로우를 같은 시간에 처리해내는 ‘분산된 정성‘ 으로의 방향으로 장인정신의 개념이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언뜻 느끼기에는 덜 정성스러운 것 같지만, ‘측정된‘ 결과로는 더 나은 정성을 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이죠. 아울러 그러한 레벨을 더욱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냄으로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일 역시 과거의 개념과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 될 것입니다. 덧붙여서 저는 이 문제에서 현재 커다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랄까요. 결국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문제는 아마도 또 다른 테크놀로지로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지만 수많은 기술둘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적절히 선택하고 최적화된 워크플로우로 적용시키는 일은 오직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인간성, 그리고 인간미 역시 이처럼 개념을 다르게 가져야 할 것일 터입니다.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진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미징 업계의 대부격 회사로 무려 130년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하던 코닥이 망한 이유가 바로 그런 부분에서 '실망'만 했던 것은 아닐까요?

실망만 하다 죽을 것인가요? 아니면 실망을 넘어서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인가요?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미래의 새로운 트렌드는 오직 살아남은 자들만이 만들고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결코 말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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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구분되는 사인, 그리고 인터페이스 이야기 (Revised)




전투기를 비롯해 각종 기계장치에 그려진 식별 사인들입니다.
주변 대비 명확하게 구분되는 색과 형태,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커다란 문자로 의미를 설명합니다.


20대 후반을 지나면서부터 기억력이 눈에 띄게 감퇴했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력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겠지만,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단순히 기억력만 떨어졌다기보다는 그만큼 이 세상에 기억해야 할 것, 그리고 판단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고 그 구성 요소들도 복잡해졌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스크탑, 랩탑을 비롯해 두세 대의 컴퓨터와 스마트 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미디어 기기들이 우리 주변에 가득 쌓이기 시작하면서 수없이 많은 종류의 케이블과 더불어 각종 수치들이 함께 우리를 에워쌉니다. 직접 눈에 보이는 케이블이야 끼워 보고서 맞는지 확인하면 되지만, 마치 스파게티 2인분을 바닥에 쏟아놓은 것 마냥 여러 종류의 비슷한 케이블들이 늘어놓여 있는데 그 중 유니크한 하나만을 찾아내야 하는 경우, 그리고 직접 연결해 확인해 보기 전에는 정확한 값이나 상태를 알 수 없어 구분이 어려운 많은 것들은 무척 곤혹스럽지요. 게다가 이런 일들로 인해 실수를 하거나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 점점 답답하게 느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항공기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도 항공대학을 나왔습니다. 항공기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부분 관심을 가졌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조종석 인터페이스였지요. 초창기에는 요즘의 소형 자동차보다도 간단한 기본적 계기들만을 탑재했던 비행기들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격히 성능이 올라갔고 부가기능도 그만큼 많아졌습니다. 그에 걸맞게 조종석은 너무나 복잡한 기계장치들, 스위치들로 가득 차게 되었지요. 그래서 조종사의 수는 늘어갔습니다. 조종사, 부조종사, 항법사, 항공 기관사... 이렇게 많은 인원이 탑승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제한된 인지 능력의 문제로 실시간으로 효율적으로 구분하여 다룰 수 있는 계기들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사가 F-16 전투기에 (우주선에서 내려온 기술인) Fly-by-Wire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비행기의 조종석 계기들은 전자적 연결 방식으로 대체었습니다. 전자기술의 도움으로 과거의 기계식 조종석은 90년대의 글래스 칵핏이라 불리는 멀티 스크린 형태의 조종석으로 큰 폭으로 변했지요. 덕분에 조종사들의 업무 부하는 대폭 줄어들었고, 과거 2~3인이 담당하던 임무를 1인이 충분히 담당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조종사의 수는 다시 줄어들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기는 한 번의 작동 실수로도 큰 인명손실과 경제적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복잡한 기계장치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안전한 비행을 위해 점검해야 할 부분들도 많아서 수많은 표준 체크리스트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종사의 부담을 계속 덜어주기 위한 조종 인터페이스도 계속 개선되고 있지요. 이러한 항공기의 운용 특성 상 조작 인터페이스, 그리고 표식들은 특별히 명확하게 표시되어야 합니다. 위기 상황, 흥분으로 조종사의 인지능력이 흐려진 상태 하에서도 매 순간순간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어이없는 실수 없이 장치를 조작하고, 사전에 작동 위험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죠. 장치들에 부착되는 사인들, 그리고 텍스트들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 속에서도 통용되도록 주로 국제공용어인 영어로, 그리고 외형부터 가능한 쉽게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많은 기계들에 비슷한 디자인이 사용되고 있지만, 부품의 방향을 바꾸어 끼우거나 커넥터를 잘못 접속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는 기본적이지요. 다소 유치해보이지만 대형 여객기의 기어 업/다운 레버는 끝 부분에 바퀴 모양 (실제로 바퀴가 돌아가기까지 하는) 이 달려 있어서 눈으로 보았을 때, 혹은 손 끝을 갖다 대기만 해도 이것이 비행기의 착륙 바퀴를 제어하는 레버임을 인지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또한, 비행기의 등화를 조정하는 스위치들은 마치 활주로의 유도등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사방에 가득 늘어놓여진 수많은 컨트롤 패널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죠. 아무리 자동화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글래스 칵핏으로 최첨단의 정보 디스플레이 기술이 동원되었다고 해도, 이러한 노력들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집니다. 인간이란 무한히 정보를 퍼붓는다고 늘 잘 감당하고 처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기억해야 하는 값, 또는 주의해야 하지만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내용들은 관련된 색의 플래그 포스트잇을 이용 굵은 펜을 이용해 손글씨로 적어 기록하고 아예 셀로판 테이프를 사용해 붙여 버리고 있습니다. 케이블에는 줄줄이 꼬리표를 달아 두기도 하고요, 소모품인 배터리 같은 경우 아예 유성 펜으로 표면에 일련번호를 써서 구분합니다. 비행기의 표면을 자세히 보면 각종 액세스 패널 옆에 수많은 글씨와 사인들이 바로 보이도록 붙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이폰과 같이 매끈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기기에도 결코 주저하지 않아요. 몇몇 사람들은 저에게 묻는답니다.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쓰고 있어?" 혹은 "겨우 예쁘게 만들어 놓은 기계인데 너무 흉칙하지 않아?" 라고 말이죠. 그러나 이런 식으로 표시해 두면 순간순간 기억을 짜내기 위한 고민의 시간 단계를 바로바로 건너뛰고 목표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워낙 게으르기 때문에 한두 가지 걸림돌만으로도 귀찮아져서 전체 작업을 포기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문제도 줄어듭니다. 아울러 제 장비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라도 겉면에 적힌 표시를 보고 제게 묻지 않고도 관련된 판단을 상당한 수준까지 할 수도 있지요. 익숙해지면 대단히 편리한, 공개된 정보 하에서 작업하는 습관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책상 밑에서 수많은 전선들을 이리저리 당겨 보며 헤매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제가 굳이 셀로판 테이프와 손글씨를 쓰는 이유는, 우선은 그것이 가장 쉽고 빠르면서도 비용이 적게 들고, 확실하게 부착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런 부분까지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예쁘게 표현하기 이전에 확실하게 인식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고, 어차피 저 혼자만을 위한 것이기에 시간을 조금 더 아끼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의 직업을 가지기 이전 약 10년 동안 컴퓨터를 사용하는 비주얼 그래픽,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로 일했었습니다. PC와 모바일 기기를 오가며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웹 페이지들의 기능과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해왔더랬지요. 디자이너 경력이 쌓여가면서 인터페이스는 시각적으로 예쁜 모양보다 인지적 측면으로 더 우수한 디자인이 더욱 가치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물론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지속가능성까지 갖춘다면 최고 디자인이죠) 그러나 디자인을 직업으로 하지 않게 되면서, 제 스스로 철저한 사용자가 되면서 아직도 생각이 부족했다는 점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기존의 기능들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부터 지극히 어려운 것이라 생각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수많은 디자인 미팅에서 인터페이스의 부실함 문제를 사용자 학습 유도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제작자가 편하자고 사용자들을 고생시켰던 것인 것이었죠.

선배 디자이너 입장에서 후배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 때 중요한 부분에서 너무 작은 글꼴이나 어려운 영어 표현을 사용한다던가, 혹은 구분되어야 하는 항목들을 비슷비슷한 톤으로 구성해 나가면 늘 강하게 지적을 해 주었습니다. 디자인은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하고 구경만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알록달록한 색과 통일되지 않은 형태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인지적 능력의 한계를 넘기는 지저분한 디자인이 됩니다. 사람이 한 번에 큰 오류 없이, 그리고 편안하게 인지할 수 있는 구분 방법과 경우의 수는 사실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결국 일단은 한 번에 표시해야 하는 양을 가능한 줄이는 것이 답이었죠. 사실 애플사의 제품들은 이와 같은 디자인에 무척 강해서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플사의 제품에 적용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레벨은 어떤 경우에는 애플적인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상적일지 몰라도 오히려 처음 사용자들에게는 너무 미니멀한 감이 많아 개인적인 철학에 모두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부분에 바로 사인을 붙이고 구분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쪽의 디자인이 더 나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얼마 전 지켜본 재미있는 사례로, 서울 지하철 9호선의 각종 사인의 디자인이 있습니다.사실 9호선은 기존의 도시철도에 작용되었던 내부의 안내 디자인의 주요 요소들을 과감히 폐지하고 대부분의 사인들을 벽면에 빌트인 형태로 디자인하여 한 눈에 미니멀하고 단정한 실내공간 디자인을 만들어 낸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에서 너무 작은 글씨를 사용했거나 대부분의 사인들을 모노톤으로 표시한 덕에 많은 이들이 기본적으로 화장실을 찾지 못한다던가 하는 문제가 보고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임시로 프린트해 부착하는 안내 사인들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그래서 작은 글씨를 다시 키우고, 적어도 화장실에서만큼은 다시 빨강과 파랑으로 구분한 화장실 사인을 바꾸어 부착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리모델링되고 있는 서울의 지하철의 기존 역사들에서는 과거 9호선에서 했던 시행착오들을 다시 하고 있더군요. 보기에는 예쁩니다. 그러나 글씨는 작아지고 시인성이 떨어집니다. 사실 기존의 지하철 글꼴은 세련됨은 좀 덜 할지 몰라도 수평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상황에서도 글씨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세심히 디자인된 것이었는데요, 서울체로 모두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에 대한 노하우는 공유되지 않는 것일까요?


스마트폰 열풍이 일반화되면서, 이제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한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더 사람들이 '화려한 것만이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는 것'을 느껴가고 있고요. 사실 모바일 기기는 직접 손에 넣고 사용해보지 않으면 지극히 섬세한 UX의 묘미를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직접 사용해 보면 개선이 필요한 부분과 왜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당장 드러나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떤 측면에서 개선이 적절하지 않은지 등을 명확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느낌을 명확한 개선 방안으로 만들고, 그 개선 효과를 구체적인 값으로 가늠해보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비록 실무 디자이너로서 일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작업들을 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생각과 판단을 하고, 한편으로는 다소 동물적 인지능력 레벨에서의 도움을 주는 레이블 붙이기 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회사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에 직접 종이를 대어 화면 밖으로 연장되는 추가 메뉴를 만들어 보거나, 아예 처음부터 종이를 자르고 붙여가며 인터페이스의 프로토타입 모델을 만들고 테스트하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사실 좋은 디자인이란 어느 분야에나 통용되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방법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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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디자인, 그리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맥과 아이폰을 너무나 잘 사용했던 경험에서, 애플이 만드는 상품들의 높은 사용 품질, 섬세한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서 나오는 만족감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애플의 기준이나 스타일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러가지 사용자 경험 디자인 스타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 뿐이죠. 애플에 비해서는 요소가 많고 다소 촌스러운 면도 많이 있지만, 윈도우 OS의 사용자 경험 흐름도 전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전 디자이너 시절 어플리케이션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로 윗분들과 많은 의견충돌을 겪었습니다. 당시 애플은 맥 OS나 아이튠즈 등의 검색창에서 검색버튼을 없애기 시작했는데요, 개인적으로 고정 관념을 깨고 인터페이스를 간결하게 만들어 둔 것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싶었지만 윈도우 OS용 어플리케이션에까지 그 방법을 쓰는 일이 반드시 적절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검색버튼 없이 검색창만 있는 인터페이스가 대세가 되었지만 당시는 요즘보다도 애플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때였기도 했기에, 애플의 Mac OS 스타일의 간결함에 적응하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적었거든요. 그러나 심미적으로, 특히 사용자의 입력(클릭)수와 같은 물리적인 면에서 애플 스타일 쪽이 훨씬 우수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나름의 결론을 얻기 위해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시안을 들고 가벼운 사용자 테스트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애플을 사용한 경험이 없는 더 많은 이들은 검색 버튼이 없어지면 검색어 입력 후 다음 절차에서 바로 헤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는 그런 분석 결과를 토대로 당시에는 반드시 검색버튼을 넣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디자인했는데, 그 부분에서 윗분과 직접적인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제시한 의견은 '윗분의 의견이 틀리다'가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는 분명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기존의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인지적 마찰 문제가 고민되었고, 그에 따라 이러이러한 실험 자료를 근거로 해 보니 '윈도우 플랫폼에서 사용될 소프트웨어의 디자인으로는 아직 시기상조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그 소프트웨어는 <검색>기능이 매우 중요한, 그래서 검색 버튼이 윈도우 OS의 시작 버튼과도 비슷한 비중이었기 때문에 아이튠즈의 검색창과는 그 시각적 비중도 달라야만 한다는 사실을 덧붙였죠. 그러나 '애플 스타일이 더 발전된 형태고 보기 좋다'라는 반론을 뚫고 나가는 데에 무척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사실 그 부분은 앞서 언급했듯 저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했죠. 다만 트레이드오프를 감안해 보수적으로 나가자고 했었을 뿐인 거였죠. 결과적으로는 제 주장을 관철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어느 회사에서나 이런 방식의 주장은 늘 '윗분의 생각을 꺾으려는 정도'로만 이해되기 마련인 듯 하더군요. 의견을 내는 스타일이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딜 가나 전문가로서 제 분야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회사에서 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양 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죠. 아무리 <좋은 것>도 어디에나 절대적으로 좋다는 법은 없습니다. 저는 가장 훌륭한 디자인이란 그 디자인이 사용될 시간과 공간적 장소, 무엇보다 사용자의 사용 패턴에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를 만족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디자인에 앞선 생각을 담아내어서, 그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 만으로도 자연스러운 생각의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전문가의 역할이 아닐까요?) 이것은 지속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좋은 것, 새로운 것 다 압니다. 그러나 애초에 주유소 자체가 없는 대 사막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족에게 스마트폰을 이용한 위치정보 연동식 주유소 검색 기능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사용자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사용자의 인지적 충격의 수준을 낮추기 위해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만, 다음 번 디자인의 진전을 함께 염두에 두는 것이죠. 또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욕심과 고집을 버리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할 때 내 손에서 끝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번을 고려하는 것. 동시대만을 생각하지 않고 미래까지 아우를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함을 염두에 둘 줄 아는 훌륭한 디자이너의 자세, 그리고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내 선에서 끝내기 위해', 혹은 '나의 공으로 만들기 위해' 너무나 서둘러서, 억지로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짧고, 세상이 변하는 타임 스케일은 그보다는 훨씬 느긋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만날 수 없는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 생각은 하모니를 이루어서 서로를 견제(혹은 의지)하며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속도' 측면에서는 피곤한 일입니다.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이 훨씬 쉽듯 기존의 것을 고치는 일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어렵고, 과시효과도 적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세상에 스스로의 몸을 세우기 위해 과거의 업적을 죄악으로 취급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데요, 사실 이래서는 역사의 발전이란 없고 매번 리셋의 쳇바퀴 회전, 같은 실수의 반복만 될 뿐입니다. 
사람이 남들보다 많이 아는 것들, 화려한 지식을 뽐내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쓸 데와 안 쓸 데를 가려가면서 가장 적절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디자인을 할 때 이와 같은 절제를 하지 못한다면 최종 사용자를 위한 상품이 아니라 오로지 디자이너의 자기만족만을 위한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그리고 대중에게는 그저 잘난척하는, 세상과 동떨어진 소수만을 위한 가치로 판단될 확률이 매우 높아지죠.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시대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면 결코 지속가능한 동력을 얻을 수 없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면서도 사용자를 스마트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결과로 많은 이들에게 사용되고, 기억되고, 나아가 생활의 일부가 되는 수준까지 올랐을 때 정말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아마도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소니 워크맨이나 애플의 아이폰과 같이 처음부터 애초에 완전히 새로운 생각의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혁신적 제품들은 그럼 좋은 디자인이 아닌가라고 물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무리 지금까지 없었던 혁신적 디자인이라고 해도, 사용자들에게 빠르게 흡수되고 세상의 프레임을 바꿀수 있는 정도라면 당연히 훌륭한 디자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제 이야기는 <신규>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업데이트, 지속가능함의 관점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한 혁신적 제품들 역시 세대를 거치며 같은 문제 앞에 노출되게 될 테지요.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문화적 계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처럼 사용자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고, 그들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사용자 위에 서서 결코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바람과 태양의 옷 벗기기 내기 이야기처럼, 그들과 같은 눈 높이에서 접근하면서 그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주고, 새로운 니즈를 발굴해내면서 천천히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비단 디자인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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